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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궁 주신은 조생부인

  다음에 인용하는 13대 풍월주 용춘공전 세계(世系) 기록을 통해 우리는 신궁의 조직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여기서 신궁에  모신 신 중에서도 최고신으로 판단되는 신궁황신(神宮皇神), 이 분야 전문학자들이 그토록이나 찾아 헤매던 주신(主神)을 만나게 된다. 놀랍게도 신궁의 주신은 여자였다.

  "(용춘은) 아버지가 금륜대왕이고 어머니는 지도황후이다. 금륜의 아버지는 진흥대제이고 어머니는 사도태후다. 지도의 아버지는 기오(起烏) 각간이고 어머니는 흥도(興道)이니 영실공의 딸이며 곧 사도태후와는 배가 같은 동생이다. 기오의 아버지 홍기(洪器)가 신궁봉사(神宮奉事)가 되어 신궁황신(神宮皇神)과 통해 선혜황후를 낳았다. 홍기의 아버지는 보기(寶器)이고 어머니는 수리(首里)이다. 보기는 아버지가 보신(寶信)이고 어머니는 황아(皇我)이다. 보신의 아버지는 미해(美海)이고 어머니는 보미(寶美)이다."

  이것은 용춘의 조상이 누구인지 족보를 따지는 장면이다. 필사본에 나오는 거의 모든 풍월주의 세계가 그렇듯이 용춘공 또한 아버지 계통은 물론이고 어머니 계통도 매우 자세히 언급돼 있다. 용춘의 모계 쪽을 밟아가면 우선 어머니는 지도황후이며 지도황후의  어머니는 사도태후가 된다. 사도는 어머니가 흥도이다. 흥도는 남편이 기오 각간이다. 기오는 아버지가 홍기다. 한데 필사본은 이 홍기라는 인물이 신궁봉사라는 직책에 있었다고  하고 있다. 신궁봉사란 무엇인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명칭으로 보아 신궁에서 제사를
받드는 일을 주관했다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홍기는 신궁황신과 정을 통해서 딸을 낳으니 그가 바로 선혜황후라고 했다.

  신궁황신은 신궁봉사처럼 그 자세한 실체를 알 수가 없다. 다만 명칭으로 보아 틀림없이 신궁에 모신 신 중에서도 최고신일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이 신궁황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남자인 신궁봉사 홍기가 이 신궁황신과 정을 통해 낳은 딸이 선혜황후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궁황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선혜황후의 어머니를 찾아야 한다. 그 어머니가 바로 신궁황신이기 때문이다.

  선혜황후는 누구인가? 「삼국사기」를 보면 선혜는 신라 제21대 소지왕(炤知王)의 비(妃)로서 이벌찬 내숙(乃宿)의 딸로 돼 있다. 선혜는 필사본에도 몇 차례 등장한다. 그가 내숙의 딸이라는 점은「삼국사기」와 일치한다.  다만 필사본에는「삼국사기」에서는 볼 수 없는 선혜의 계보에 대한 좀더 상세한 정보가 6대 풍월주 세종전에 다음과 같이 수록돼 있다.

  "(세종은) 어머니가 보옥공주이니, (습보공의) 딸이다. 습보공은 내물왕의 손자가 된다. 지소의 어머니는 보도황후이니 소지왕의 딸이다. 보도의 어머니는 선혜황후인데 내숙공의 딸이다. 선혜의 어머니는 조생부인인데 눌지왕의  딸이다. 조생의 어머니는 아로이고 아로의 어머니는 내류이며 내류의 어머니는 광명이고, 광명의 어머니는 아이혜이고, 아이혜의 어머니는 홍모이다. 홍모의 어머니는 곧 옥모이다."

  이렇게 보면 선혜는 아버지가 내숙공이며 어머니가 19대 눌지왕의 딸인 조생부인(鳥生夫人)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신궁황신은 조생부인이 된다. 하지만 이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아주 중요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선혜의 부모가 누구인지에 대해 다름아닌 필사본 자체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즉 13대 풍월주 용춘공전에는 신궁봉사 홍기가 신궁황신과 정을 통해 낳은 딸이 선혜라 하고 있는 반면 6대 풍월주 세종전에 따르면 선혜는 내숙공의 딸로서 어머니가 조생부인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파고들기 전에 우선 조생부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조생부인은 필사본에는 분명 눌지왕과 아로부인 사이에서 난 딸로 기록돼 있다. 조생이란 이름은「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즉위 원년조를 보면 지증왕의 어머니이며 눌지왕의 딸로 나오고 있다. 이로 보아 조생부인이 눌지왕의 딸이며 지증왕의 어머니임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조생의 남편, 즉 지증왕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같은「삼국사기」에 따르면 조생부인은 나물왕 손자인 습보(習寶) 갈문왕과의 사이에서 지증을 생산했다. 필사본 6대 풍월주 세종전에도 습보는 내물왕의 손자라고 기록돼 있다. 이제 미뤄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선혜의 어머니가 조생부인임이 분명한 상태에서 아버지가 내숙공인가, 아니면 신궁봉사 홍기인가를 확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지금으로서는 없다. 다만, 조생의 정식 남편이 내숙공인 것은 사실이지만 선혜황후는 조생이 신궁봉사인 홍기와 사통(私通)을 해서 낳은 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어떻든 신궁에 모신 신들 중에서도 최고신인 신궁황신(神宮皇神)은 조생부인이었다. 이렇게 보면「삼국사기」에 나오는 신궁 설치에 관한 상이한 두 기록 중에서 지증왕 때 만들었다는 '제사'조 기록이 더욱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증왕은 서기 500년, 64세에 즉위하고 난 뒤 신궁을 세우고 그 곳에 어머니 조생부인을 모셨던 것이다. 어떻든 이런 고찰을 통해 우리는 신궁이 왕을 비롯해 생전에 대영웅이나 호걸이라고 칭송받던 신라 최고 지배층을 형성한 주요 인물들을 신으로 모신 곳이었으며 따라서 신궁에서 받든 신은 조상신임을 알 수가 있다. 더불어 신궁은 공주나 왕자가 되는 의식과 같은 국가의 중요한 대제를 행하는 곳으로 활용됐음도 확인했다. 또 나아가 신궁에 모신 신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황신은 지증왕의 어머니인 조생부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신궁은 살아 생전에 이미 신인 왕을 비롯해 죽어서 신으로 추앙된 인물들을 모신 신국(神國) 신라의 구심체였던 것이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taeshik@yna.co.kr) / 2002.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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