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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는 지아비없이도 전군을 신화한다"

  따라서 우리는 '골품'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필사본 다음과 같은 대목들을 지금까지 생각과는 완전히 달리 '골의 품계'로 해석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① (법흥)대왕이 (옥진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비대공을 태자로 삼으려 하자 (위화랑)공이 말리며 간하기를 "신의 딸(=옥진)은 골품이 없고 또 영실과 함께 살았으니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법흥이 돌아가시자 비대공의 왕자 지위를 낮추어 공사(公祀)를 받들게 했다.(위화랑전)

  ② 설원랑의 낭도는 향가를 잘 하고 속세를 떠나 유람을 즐겼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문도(文徒. 문노가 이끄는 화랑)를 가리켜 호국선(護國仙)이라 하고 설도(薛徒. 설원랑의 낭도)를 가리켜 운상인(雲上人)이라 했다. 골품 있는 사람들은 설도를 많이 따랐고 초택(草宅) 사람들은 문도를 많이 따랐다.(설화랑전)

  ③ 신첩(臣妾)이 되어 지아비가 없었는데 오직 공의 처첩은 유독 배반하지 않았다. 골인(骨人)들이 아름답게 여겼다.(보리공전)

  ④ "골품이란 왕위와 신위를 구별하는 것이다"(용춘공전)

  ⑤ 공은 용력이 많고 격검을 좋아하여 일찍 문노의 문하에  들어갔다. 검소하게 지냈으며 골품을 뽐내지 아니했다.(호림공전)

  ⑥ 감지는 다섯 형제가 있었는데 모두 우리 나라 골품 있는 여자를 아내로 맞아 우리 조정에 복종했다.(유신공전)

  ⑦ 공이 "색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것도 도가 아닌데 어찌 골품을 속이는가?"라고 따졌으나 어쩔 수 없었다.(예원공전)

  ⑨ 21대 풍월주 선품공은 구륜공 아들이다. 예원공을 따라 화랑도에 들어갔다. 용모가 절묘하고 언행이 매우 아름다웠다. 문장을 좋아하고 선불에 통달했으니 진실로 높은 골품의 인물이다.(선품공전)

  위에서 말하는 골품은 모두 성골과 진골, 두 골의 품계를 의미한다. 이들 인용문 중에서도 우리가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곳은 ②와 ④이다. ②의  경우 "골품있는 사람"의 상대되는 표현으로 초가집 정도로 해석되는 "초택(草宅) 사람들"이 대비되고 있다.
  초택 사람들이 어떤 부류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일반 평민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골품이 평민을 제외한 골과 두품 신분을 합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볼 수 있다'는 말이 '그렇다'는 말과 동의어가 될 수는 없다.
  ④는「삼국사기」나 삼국유사」등에서는 전혀 볼 수 없던 성골과 진골에 대한 아주 명확한 개념 구분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더없이 귀중한 자료이다. 골품, 즉 성골ㆍ진골의 두 골은 왕위(王位)와 신위(臣位)를 구별하는 기준선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골은 왕이 될 수 있는 존재이고 진골은 신하 자리를 차지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성골이 씨가 마르기 전에 왜 신라가 성골만이 왕위를 독점했는지 그 오랜 궁금증이 비로소 풀리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왕이 정점을 이룬 성골 집단은 신라 사회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했는가?
  이에 앞서 우리는 성골이 도대체 어떤 집단인지를 확정해야만 한다. 이에 대한 수많은 학설이 제기돼 있으나 지금으로서는 '왕궁에 거주하는 왕과 그 형제 가족'이라는 이종욱 교수의 주장이 가장 타당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성골집단이 신라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본다.
  6대 풍월주 세종에 대해 필사본은 아버지는 태종(苔宗), 즉 이사부이며 어머니는 지소태후라고 밝히고 있다. 지소태후는 법흥왕의 동생인 입종 갈문왕의 부인으로 이사부와 사통(私通), 즉 사사로이 정을 통해 세종을 낳았다.
  지소태후는 앞서 법흥왕의 친동생인 입종과의 사이에서 진흥을 생산했으므로 세종은 진흥과는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다. 이에 필사본 세종전에는 진흥왕이 세종을 가리켜 "내 막내아우"라고 하고 있다.
  필사본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사부와 세종의 관계다. 이사부는 세종의 친아버지임에도 아들에게 신(臣)이라 칭하고 있다. 그런 까닭은 피를 나눈 부자임에도 아버지는 진골인 반면 아들은 성골인 황후의 피가 섞인 전군(殿君)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종은 진골인 아버지 이사부를 뛰어넘는 성골인가? 그렇다는 증거는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아버지와 같은 진골일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더 커 보인다. 한데 세종에게는 성골인 황후의 피가 흐르고 있다.
  세종과 같은 전군은 그 부모 중 한 쪽이 왕이나 왕후가 아님에도 그렇지 않은 진골과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이는 성골 피를 이어받은 아들 세종에게 신이라 칭하며 몸을 굽히는 이사부의 외침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소)태후는 신성하므로 지아비 없이도 전군(殿君)을 신화(神化)할 수 있습니다. 전군은 신의 아들(神子)이십니다. 어찌 감히 신하가 아버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 말로 미뤄볼 때 왕과 왕비 같은 진짜 성골은 물론이고 그러한 성골 피를 이어받은 전군(격이 낮은 왕자) 또한 신라인들에게는 신(神)과 같은 존재였음이 명백하다.
  이는 첫째, 태후는 신성 불가침이므로 거기에서 난 아들은 진짜 아버지 신분이 어떠하든 그와 관계없이 신격화되며, 둘째, 따라서 세종을 가리켜 신의 아들이라는 이사부의 말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누차 강조되는 신(神)의 원천은 말할 것도 없이 진흥왕과 그 어미인 지소태후가 성골이라는 데에서 말미암는다. 성골에 대한 이런 관념은 앞서 인용한 "골품이란 것은 왕위와 신위를 구별하는 것"이라는 용춘의 말을 음미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필사본 11대 풍월주 하종전을 보면 법흥왕이 생전에 한 말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억조창생이 나를 신으로 여기는데 나는 옥진(후궁 이름)을 신으로 여긴다."
  여기서도 분명 성골왕 법흥은 신라인들에게 신격화돼 있다. 성골은 이케가미(生神), 즉 살아있는 신으로 군림했으며 죽어서도 당연히 신이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성골이 신으로 군림한 신라, 이것이야말로 신궁(神宮)이 표상하는 신국(神國) 신라의 실체인 것이다.
  요컨대 성골은 이사부 같은 진골이 결코 넘을 수도, 뚫을 수도 없는 두터운 장막을 쳐놓은 신성 불가침 그 자체였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taeshik@yna.co.kr) / 2002.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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