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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 특집 39] 용왕신과 남색

참고 자료 조회 수 12328 추천 수 92 2002.02.27 00:44:56
용양신과 남색

  필사본을 보면 특정 남자를 가리켜 용양군(龍陽君) 혹은 용양신(龍陽臣)이라고 표현한 사례가 더러 나온다. 문맥을 보면 이 명칭은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인물의 심복, 혹은 대리인 정도의 뜻으로 쓰이는 것으로 일단 추정할 수 있다.
  용양이란 무엇인가? 용양은 중국 전국시대 7웅의 하나인 위(魏)나라 안리왕(安釐王)이 총애하던 신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관계는 뜻밖에도 남색(男色)이었다. 안리왕과 용양에 얽힌 이야기는 기원전 3세기 무렵 편찬된 기록인「전국책」(戰國策) 가운데 위나라 역사와 관련된 '위책(魏策)'이라는 곳에  나온다. 여기에서 유래한 용양신 혹은 용양군은 남색으로 주인이나 상관을 받든 인물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필사본에 용양신 혹은 용양군이라고 묘사된 인물들은 남색으로 상관을 보필했다는 말인가? 하지만 필사본에는 이런 표현을 제외하고는 남색이라고 일컬을 만한 흔적이 겉으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색의 대명사인 용양을 빗댄 인물이 여러 곳에 보이는 마당에 남색의 흔적을 덮어놓고 부정할 수도 없다. 이에 용양신 혹은 용양군이 의미하는 바가 남색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런 표현이 등장하는 구절을 샅샅이 뒤져 그 전후 맥락을 뒤져봐야 한다.
  첫째, 법흥왕이 영실공을 용양군으로 삼아 총애했다고 2대 풍월주 미진부전에 나온다. 원문에 총(寵)이라고 표시된 총애라는 의미가 남색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하기 곤란하다.
  5대 풍월주 사다함전을 보면 그의 아버지 구리지에게는 설성이라는 개인 신하가 용양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한데 설성을 묘사하는 필치가 영 예사롭지 않다. "모습이 아름답고 교태를 잘 지어 보였다. 구리지가 전쟁에 나가 자리를 비우자 (구리지 부인인) 금진과 정을 통해 설원랑을 낳았다." 아름답고 교태가 있는 설성. 남색의 조짐이 짙어진다.
  다음은 이렇게 해서 태어난 7대 풍월주 설화랑전 첫 대목이다. 그의 아버지인 설성에 대한 또다른 묘사인데 이쯤이면 남색을 부인하기가 곤란할 듯하다. "7대 풍월주 설화랑은 처음 이름이 설원랑이다. 금진낭주의 사자(私子)이다. 그 아버지인 설성은 낭도로서 모습이 아름답고 교태를 잘 부려 구리지의 용양신이 되었다. 이로써 낭주와 통하여 (설화랑을) 낳았다."
  한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설성이 금진낭주와 정을 통해 아들 설원랑을 낳은 것이 구리지의 용양신이 된 결과라고 설명되고 있는 점이다. 이는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접속사 '내(仍=이로써)'가 쓰인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필사본에 등장하는 용양신 혹은 용양군은 이 세 가지 사례가 전부다. 세 가지라 했으나 실은 두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는 용양신의 실체를 논하기가 쉽지 않다. 이종욱 교수는 용양신이 남색 관계를 말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왜 굳이 필사본이 용양신이라는 표현을 썼는가를 물어 보아야 한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남색으로서 지위 높은 인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필 왜 용양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빌려와 썼겠는가?
  이를 방증하는 자료가 필사본에 있다. 이 교수 견해를 따른다면 용양신 혹은 용양군은 총애하는 신하, 혹은 심복 정도라는 뜻이 되는데 이럴 경우 필사본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표현이 폐신(嬖臣)이다. 한데 이 폐(嬖)라는 글자 또한 중국 성풍속 연구 결과를 존중한다면 남색 흔적을 지울 길이 없다고 한다.
  필사본에는 총애하는 신하 혹은 심복이라는 뜻으로 용양신같은 실존 인물에 빗대어 표현한 말이 있으니 등통(鄧通)이 대표적이다. 1대 풍월주 위화랑전에 보면 법흥왕이 그를 따른 마복칠성 중 한 명인 위화랑을 일러 "나의 등통"이라 하고 있다. 등통은 중국 한나라 문제의 총애를 받던 신하다.
  등통이라든가 폐신이라는 말이 있는데 왜 굳이「화랑세기」는 남색의 대명사인 용양이라는 실존 인물을 빌려다 용양신 혹은 용양군이라는 말을 썼는가? 그것은 용양신이라는 대명사가 가리키듯 남색으로 봉사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비록 사례가 몇 가지에 지나지 않으나 용양신이 남자와 남자의 관계에만 쓰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법흥왕과 영실공, 구리지와 설성은 남-남 관계이다. 더불어 설성의 경우 묘사된 외모가 여자를 뺨쳤다는 점으로 보아 남색의 흔적이 농후하다.
  용양신으로 대표되는 이 남색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몰랐던 신라의 한 단면이며, 나아가 필사본이 소설처럼 창작될 수 없는 것임을 입증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된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taeshik@yna.co.kr) / 2002.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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