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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썩은 감자(도종환)

말씀과 묵상 조회 수 5455 추천 수 162 2006.07.23 22:52:26

                             썩은 감자




  산방에서 아침에 자고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방을 쓰는 일입니다. 빗자루로 천천히 방을 쓸어나가는 것은 청소를 하는 일이지만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내 마음을 정돈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깨끗하고 정갈해진 방의 창문 앞에 앉아서 아침 기도를 하는 동안 몸은 경안(輕安-가볍고 편안)해지고 마음은 맑고 깊어집니다.




   음식을 먹고 난 그릇들을 개수대에 그냥 쌓아 놓지 않습니다. 먹고 나면 바로 물에 깨끗이 닦아서 치우곤 합니다. 주위가 깨끗해야 마음도 편안합니다. 바쁜 날은 음식쓰레기통을 미처 비우지 못하기도 하고, 쓰레기통이 가득 차는 때도 있지만 대체로 잘 치우는 편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는 설거지를 하려고 서 있는데 작은 날벌레들이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여름철이라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다, ‘음식쓰레기 때문인가 보다’ 하고는 음식쓰레기통을 비웠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에는 좀 더 많은 날벌레들이 쓰레기통 주위에 모여 날고 있어서 안 쓰던 살충제를 꺼내 뿌렸습니다.




   그런데 아침 청소를 하다 주방 옆에 있는 책상 밑에 물이 고여 있는 걸 보았습니다. 걸레질을 하려고 책상 밑에 있는 라면 상자를 꺼내다 저는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라면 상자 뒤에 감자 한 자루가 썩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감자를 얻어다 책상 밑에 놓아 두고는 까맣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라면 상자에 가려 못 보고 지내는 사이에 감자는 어두운 곳에서 까맣게 썩은 채 제 몸을 벌레에게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 깔끔을 떨며 깨끗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도, 보이지 않는 곳은 썩고 부패한 구석을 지니고 있는 게 제 삶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안에 썩는 곳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들 지저분하게 사는 모습을 손가락질하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제 발 밑이 썩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남들 사는 모습이 냄새난다고 고개 돌리고 있었습니다. 나부터 돌아보지 않고 남의 잘못과 결점만 눈 크게 뜨고 쳐다보았습니다. 벌레만이 아니라 구더기까지 꿈틀거리는 썩은 감자를 치우며 민망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나도 돌 맞을 짓을 하면서 남에게 돌팔매질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살았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서도 손에 돌을 쥐고 살았습니다. 제 안에 냄새나고 썩는 것이 어디 감자뿐이겠습니까. 걸레를 빨아 감자자루가 있던 자리를 닦고 또 닦으며 하루가 다 가도록 부끄러웠습니다.




                       ● 도종환 진길 아우구스티노·시인

가톨릭인터넷 <굿뉴스> 게시판에 노병규 님이 올리신 글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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