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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글이 흔들린다] 17. 틀린 줄 알면서도 쓰는 말 수두룩

  우리말이 있었다고도 하고 없었다고도 한다. 신문사 논설위원을 지낸 정 아무개가 ‘진지’(밥)도 한자말이므로 우리말의 99%가 한자말이라고 큰소리 꽝 쳤다. 헛소리도 심하다. 쓰이는 것은 절반도 안 된다.
  ‘왕따’가 쓰이더니 ‘괴롭힘’도 쓰이고, ‘이지메’라는 일본말까지 들린다. 그런 짓을 우리말로 ‘조련질’이라고 했다. ‘조련’이란 말이 우리 사전에는 군대용어인 ‘조련(操鍊)’(교련·훈련)이란 한자말에 묻혀 있다. 찾아 주어도 서툴러서 쓰지 않는다.
  ‘길미’(이자) ‘날찍’(소득) ‘드림셈’(할부) ‘띠짐’(개간) ‘바림’(보카시) ‘수멍’(암거) 들은 앞으로 살려 썼으면 좋겠다.
  집안말이 엉망이다. 남녀가 ‘동세’라고 하던 우리말을 남자 쪽에서 한자말로 ‘동서(同壻)’라고 버틴다. ‘같은 사위’라는 뜻이다. 그런 것을, 여자끼리도 ‘동서’라고 하니까 꼴불견이다. 만주에서도 쓰이는 우리말 ‘사둔’을 ‘사돈’이라고 잘못 쓰는데, 본디는 ‘사돈’(혼인)을 한 집안끼리 ‘사둔’이 되는 것이다.
  ‘처남(妻男)’은 ‘아내의 사내’니까 남편도 되고 샛서방도 된다. 그래서 ‘남(남)’자를 바꾸었으나 그것도 시시덕거린다는 괴상한 자다. 중국처럼 우리도 ‘안오라비’(안오빠, 안동생)라고 하면 된다.
  ‘아이덴티티’를 ‘정체성’이라고들 쓰고 있다. ‘정체’라고 하면 ‘맏아들, 친아들, 태자, 바른 글씨체, 변화기 전의 모습, 정상 상태의 모습 ……’ 들 별의별 뜻이 많은데, 보통 ‘참된 본디의 모습’이란 의미로 ‘정체 불명, 정체 탄로, 정체가 뭐냐, 정체를 밝혀라’들처럼 쓰이니까 맞지 않다. 정설처럼 ‘어떤 사람의 일관성이 남의 인정을 받는 일’이라고 하지만 어렵고, 쉽게 ‘자기 동일성, 동일성, 본체, 똑같은 것’이라고도 하고, 그 밖에 ‘일체감, 일치, 신원, 정체’ 따위 뜻도 있다고 한다. 더 쉽게 우리말로 ‘똑같음성’이라고 하면 어떨까.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이 아무개가, 일본에서 ‘우리의 집’이라고 하니까, ‘의’가 붙는 겹토는 쓰지 말자고 했다.
  ‘나와의 싸움’이란 말의 ‘와의’도 일본 식이니까 못쓴다는 것이다. ‘(으)로의’ 따위 겹토 여남은 개가 거의 우리 사전에도 없고, 일본 사전에도 없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리 사전들에 있는 ‘에의’에 들어맞는 겹토도 일본 사전에는 없다.
  그러고 보니 겹토가 우리 식 같기도 하다. 일본 식이라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그와 걸맞은 말이 없으면 쓰게 된다. 일본 식으로 쓰는 ‘공해, 과학, 수속’들 말은 중국에서도 쓴다.
  일본에서 쓰는 ‘세대’를 중국에서는 ‘주호’라 하고, 우리는 ‘가호’라고 한다. 그런데도 ‘가구’를 쓴다. ‘가구’는 ‘가족과 식구’라는 뜻이다.
  ‘고수’와 ‘부지’가 일본에서만 쓰인다. 일본에도 없는 왜말 ‘고수부지’를 우리 민중서림 ‘국어대사전’에 만들어 넣었다. 그것을 국어심의회에서 ‘둔치’라고 다듬었다. ‘둔치’는 호숫가나 강가, 바닷가에 있는, 물이 있는 곳이다. 큰비가 안 오면 물이 없는 ‘강턱’이 맞다. ‘강턱’은 강에만 있다.
  ‘노견’은 ‘갓길’이 아니고 ‘길섶’이다. ‘갓길’은 ‘강갓길’(강변길) ‘호숫갓길’(호반길) ‘바닷갓길’(해안길) 들이다. ‘길섶’은 길의 가장자리고, ‘갓길’은 가에 있는 길의 전체다. 마치 ‘방구석’과 ‘구석방’의 다름과 같다.
  여의섬에 섬둑을 쌓았다. ‘여의섬둑’인데, ‘윤중제’라는 일본말을 갖다 붙였다. ‘윤중’은 일본말 ‘와쥬우’를 적은 한자의 우리 음이다. 우리말로는 ‘방죽골’이다. 방죽골은 강물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둘레를 둑으로 막은 마을이다. 그 둑이 일본말로 ‘와쥬우테이’인데, 그것을 ‘윤중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윤중 약국’ ‘윤중 유치원’ ‘윤중 테니스장’ ‘윤중 학교’까지 있다. ‘방죽골 학교’도 아닌 ‘윤중 학교’서 뭘 하겠다는 건가. 고치라고 했더니 졸업생들이 못 하게 한단다.
  몰랐을 때에 내린 결론이 괜찮으면 몰라도 잘못 됐으면 바로잡는 것이 도리다.


경향신문 / 정재도(한말글연구회장) / 2004. 9. 7. 17:48:47 최종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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